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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이야기/오늘의 추천SF

(오늘의SF-02월27일자)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전쟁>, 모든 판단을 남에게 맡길때 지금 당장 찾아올 수도 있는 미래상


  불과 하루 정도 전(현지 시간으로 27일 오전 7시 반 경) 미국의 오하이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로 인해 총 5명이 부상당했고 한 명이 사망, 또 한 명은 중태라고 하는군요.

  미국의 학교에서 총기 난사사건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수없이 벌어진 일이죠. 매일 같이 거리 곳곳에서 총기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수없이 많은 이가 총으로 살해되는 나라니까요.

  하지만, 학교에서까지 총기가 사용되는 사태는 분명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볼링 포 콜롬바인’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유명한 콜롬바인 학교의 사건이 떠오릅니다. 

  1999년 4월 20일 콜롬바인 학교에 남학생 두 명이 반자동총을 갖고 나타나 무차별적으로 총알을 날렸습니다. 자그마치 900발의 총알을 발사했고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죽고 수많은 이가 다쳤지요.

  당시 미국의 언론은 이 사건이 인터넷이나 게임, 또는 노래 때문에 생겼다고 떠들었습니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는 이를 풍자해서 다큐멘터리에 ‘볼링 포 콜롬바인’이라는 제목을 붙였죠. “아침 6시에 같이 볼링을 쳤으니, 볼링 때문 아냐?”라는 식으로...

  그렇다면 정말로 총기 난사는 학교 폭력은, 그리고 전쟁은 게임이나 영화, 혹은 볼링이나 야구 때문에 생기는 걸까요?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에선 콜롬바인 참사 뒤에도 콜롬바인 인근에서 열린 대규모 NRA(전미총기협회) 집회에서 “총은 포기 못해!”라며 장총을 들어 보이는 배우 찰턴 헤스턴의 모습을 보여주며, 9.11 테러 후 미국 사회를 뒤덮은 공포분위기를 그 이유 중 하나로 제시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말합니다. “모든 것은 볼링 때문이야.”

  마이클 무어 감독이라면 9.11 테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화씨911’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제목은 ‘책이 금지된 사회’의 이야기를 그린 레이 브래드버리의 SF소설 <화씨451>을 패러디한 것이기도 하죠.

  하지만, 오늘의 추천작은 이 작품이 아닙니다. <화씨451>은 통제 사회의 문제보다는, 기록 매체를 없애고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매체만이 넘쳐난 결과 사람들이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고, 장기적인 기억력을 잃어버리는 세계를 그린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인터넷으로 인해 생각을 깊이 하지 않게 되는 현재의 세태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보다는 이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는 다른 작품을 소개합니다. 바로 아리카와 히로의 <도서관 전쟁>입니다.

  <도서관 전쟁>의 애니메이션 6화에서 <화씨451>이 소개됩니다. 바로 ‘금서’로 말이지요. 왜냐하면 <화씨451>은 국가에 의해 서적을 검열하고 그로 인해 사실상 내전 상태에 빠지는 미래를 ‘예언’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도서관 전쟁


  다시 말해 <도서관 전쟁>의 세계는 바로 그 같은 검열과 그로 인한 싸움이 거의 일상화된 사회의 이야기입니다.

  가까운 미래, 일본에서 ‘미디어 양화법’이라는 것이 만들어졌습니다. 늘어나는 사회 문제를 줄이겠다는 뜻으로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고 인권을 침해하는 표현’이 담긴 미디어들을 규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한 이 법률은 책만이 아니라 모든 매체를 검열하고 검열에 걸린 것을 폐기하게 됩니다.
  한편, 이에 대해 일본의 도서관은 ‘모든 검열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명시한 도서관법을 내세워 검열에 맞서고, 공권력을 앞세워 검열을 실시하는 양화특무기관에 맞서는 조직 ‘도서대’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30여년에 걸친 두 기관의 싸움으로 두 조직은 총기도 휴대한 준군사조직으로 바뀌게 되지요. 양화대는 총기를 난사하며 도서관을 습격하고 도서대는 총기를 들고 이메 맞섭니다. 상대를 살상하는 공격은 가능한 삼가지만 부상은 적지 않게 마련이고, 물론 사상자가 발생하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이야기는 이 같은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주인공 카사하라 이쿠는 고교 시절 양화대원의 검열에 걸려 책을 빼앗기게 되었을 때 한 도서대원의 도움으로 책을 찾게 되고, 이를 계기로 도서대에 지원합니다. 사고뭉치로 불리고 교관과도 충돌하면서도 그녀는 뛰어난 운동실력과 열정을 인정받아 ‘도서 특수 부대’에 배속되고 그곳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져 나갑니다.


  ‘무력’을 내세워 개인이 사려고 집어든 책마저 강제로 빼앗고 불살라버리는 끔찍한 세계이지만, 이 작품의 분위기는 여느 ‘디스토피아 작품’과는 굉장히 다릅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이 ‘꿈꾸는 소녀(?)’라는 점에서 기인할지도 모르겠군요.
  이를테면 얼굴을 모르는 도서대원을 ‘왕자님’이라고 부르며 동경하는 이쿠의 모습은 가히 순정 만화 속 여주인공 캐릭터이니까요. 그녀가, 또는 그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결코 훈훈한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굉장히 불편하고 암울한 내용들이 많지요. 양화대와의 싸움도 그렇지만, 이른바 학부모 단체와의 싸움고 등장하고, 심지어는 도서대와 도서관 내부에서도 알력이나 권력 투쟁, 음모가 횡행합니다.

  하지만, 언제나 앞으로 보고 달려가는 주인공 카사하라 이쿠의 존재, 그리고 그 주변에서 그녀를 믿고 돕는 여러 인물들의 존재가 이 같은 어두운 세계의 모습을 밝게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물론 이 작품 속의 세계는 <1984>나 <이퀼리브리엄> 같은 끔찍한 세계는 아닙니다. 적어도 기자를 총살하거나 잡아가두고 항상 프로파간다 방송만 흘러나오는 세계는 아니지요. 어떤 점에서 그 사회는 현재의 우리 세계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총만 안 들었다 뿐, 각종 이유를 대며 검열과 규제를 거듭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현실과는 거의 차이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더욱 끔찍하고 어둡게 느껴집니다. 지금 이 순간이라도 당장 실현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이 안의 사건들은 생명의 위기를 느끼게 할 만큼 위험한 일은 별로 없지만, 도리어 ‘사회적인 매장’을 가져올 수 있는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불편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점에서 말이죠.

  한 가지 예로 한 도서관원이 제멋대로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책을 폐기한 혐의로 심문을 받다가 주인공이 공범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정작 그 자는 ‘요양’을 위해서 빠지고 주인공이 심문을 받게 되지요. 하지만, 심문보다 끔찍한 것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도서관원들의 눈길입니다. 이른바 ‘집단 따돌림’이라는 모습으로 말이죠.

  <도서관 전쟁>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양화법에서 내세우는 ‘인권을 침해하는 표현’이라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이발사’라는 표현이 ‘차별 용어’라고 제기되는데, 실제론 거리마다 수많은 이발소에서 ‘이발사’가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발사들 자신은 그것이 차별 용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양화법 위원회에서 일방적으로 그렇게 판단하여 결정하고 규제한 것입니다.


  이 작품은 라이트 노벨처럼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애니메이션과 만화도 나왔으니 더욱 편하게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 안의 내용을 곰곰이 씹어보면, 굉장히 잘 짜여졌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 애니메이션으로 나온 도서관 전쟁. 총 13화(12화+1화) 짧지만 내용을 잘 옮겨주었다. ]



  왜냐하면 <1984>나 <이퀼리브리엄> 같은 미래는 쉽게 찾아오기 힘들지만(적어도 현대의 민주국가에선), ‘미디어 양화법’은 지금 당장이라도 시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테스트용 게임 배포’ 만으로 징역형을 부여하려는 법안까지 이야기되는 상황이니까요.


  양화법이 탄생한 것은 시민의 사상을 멋대로 재단하려는(즉 옳고 그른 것을 마음대로 판단하는)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를 방조한 시민이 있었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됩니다.


  양화법이 교묘한 것은 ‘개인 소유 재산’에 대해서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돈을 내고 구입한 책은 압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계산전에는 얼마든지 압수할 수 있지요.

  이쿠의 고교 시절, 오랫동안 기다린 신간을 서점에서 집어든 순간 양화대가 도착하여 책을 압수하려 합니다. 양화대는 “그 책은 검열대상이므로 수거한다. 내놓지 않으면 절도죄가 된다.”라고 얘기합니다.
  이에 대해 주인공은 “차라리 도둑이 될 테니, 경찰을 불러 달라.”라고 말하지요. 그 순간 도서대원이 도서대의 권한으로 책을 빼앗기지 않게 해 주었지만, 이 장면은 양화법이라는 것이 생기지 않으려면 시민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고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부당한 탄압과 억압에 맞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또 하나, 사회 문제에 대해 두려움을 느낀다고 해서 그것에 대한 판단을 남에게 맡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담) 한편 총기 난사 사건으로서 작년엔 노르웨이에서 한 청년이 노동당 청소년 캠프 행사장에서 수많은 이를 ‘학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 근본주의자였는데, 당시에도 일부 언론은 ‘게임 때문’이라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당시 노르웨이에서는 미국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그의 개인적인 문제이며, 이를 이유로 사회를 공포분위기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사상을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러한 사회 분위기가 있다면, 양화법 같은 황당하고도 끔찍한 법은 만들어지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