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수업 중 롤플레잉 게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한 학생이 질문을 했습니다.


  "사냥하다보면 쥐 가죽처럼 쓸모없는 아이템이 나오잖아요? 그게 왜 필요한가요? 그게 없으면 리소스도 줄어들텐데. 차라리 그만큼 돈으로 주면 안 될까요?"


  타당한 의문입니다. 솔직히 쥐 가죽 같은 건 재료 아이템이 될만한 것도 아니고, 팔아봐야 얼마 받지도 못합니다. 아예 줍지도 않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하죠.


[ 쥐 가죽 만든 신발? 음? 재료 아이템도 괜찮네요.^^ ]



  그렇다면 돈으로 더 주면 어떨까요? 가령 쥐가죽이 50원인데, 그대신에 100원의 돈을 더 준다면?


  이러한 의문으로부터 게임 디자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경제 시스템과 관련한 레벨 디자인 측면에서 생각해 볼때,[쥐 가죽] 같은 아이템은 그 가치를 조절함으로써 '게임 속의 경제'를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은 플레이어가 함께 활동하는 MMORPG에서 화폐의 가치를 유지하는 건 게임 플레이어의 불만을 줄이는데 중요한 만큼, 가치를 맘대로 바꿀 수 없는 화폐가 아니라 아이템의 매매가를 통해서 경제를 조절하는 건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쥐가죽'을 사용하는데는 그보다도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게임에 대한 만족도'라는 측면이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은 사냥을 할때 '경험치'나 '돈'이 떨어지는 양을 일일이 세보는 스타일인가요?


  적어도 저는 그렇게 플레이하지 않습니다. 게임을 분석하거나, 역기획 자료를 만들거나 할 때를 빼면 말이죠. 심지어 퀘스트에서 얻는 경험치도 신경쓰지 않는데 무수하게 많이 잡는 '쥐'의 경험치나 떨어지는 돈을 일일이 세어볼리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쥐를 잡아서 100원이 떨어지다가 200원이 떨어진다고 해도 플레이어들은 이를 인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만족도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겠지요.


  반면 50원짜리 쥐가죽이 떨어진다면 '뭔가 얻었다.'라는 느낌이 확실히 납니다.


  게다가 쥐가죽을 잔뜩 얻어서 상점에 팔아 몫돈을 손에 넣을 때 다시 한번 '돈 벌었다.'라는 느낌이 들죠.



  '쥐'가 돈을 가지고 다닐리가 없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산적이나 오크가 돈이나 귀금속을 가지고 다니는건 별로 이상하지 않겠지만, 쥐가 돈을 들고 다닌다?


  애니메이션 [드래곤 퀘스트]에서는 보석으로 몬스터를 만들어서 몬스터가 죽으면 보석이 떨어지는 개념이 있었습니다.(이는 소설 [던젼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될까?]에서도 마석을 중심으로 몬스터가 생성되는 개념으로 재활용했습니다.)


  소설 [로그 호라이즌]에선 아예 몬스터가 태어날때 동전이 주어진다는 것을 세상의 규칙으로 설정하기도 했죠. 그래서 지하엔 세상의 온갖 동전이 모여드는 거대한 샘 같은 곳이 있다는 개념으로 말입니다.


  이런 설정을 통해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설정을 더하더라도 그건 뒷 설정에 불과하며, 상식적으로 볼때 쥐를 잡았는데 돈이 떨어지는 건 이상합니다. '쥐 가죽'이 떨어지는게 더 자연스럽습니다.


[ 돈이 쏟아져 내리는 던젼. 이런 설정을 부여하는건 좋지만, 그래도 쥐가 돈을 떨어뜨리는건 어색합니다. ]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쥐가죽'이라는 아이템을 모아서 파는 행위 자체가 게임 플레이. 바로 '게임과의 대화'라는 점입니다.


  '게임과의 대화'가 늘어날수록 플레이어는 내가 직접 뭔가를 하는 기분이 들고, 그만큼 게임에 몰입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그만큼 게임이 단순히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내게 있어 또 다른 삶으로서 즐거움을 더합니다.


[ 필요할 때 만나는 상인만큼 고마운 존재도 없죠. 게임 플레이에 도움이 된다면 더욱. ]


  [몬스터 헌터] 게임에서는 사냥감을 잡고 나면 해체 칼을 들고 그 시체를 해체하여 고기나 가죽을 얻도록 함으로써 그 같은 '게임과의 대화'를 더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이 [크로우폴(Crowfall)]이란 게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광산에서 채광을 할 때, 광석 오브젝트를 클릭해서 단순히 얻는게 아니라, HP 개념을 두어 광석과의 사투를 벌이는 식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울티마 온라인]에서 광산 곳곳을 파면서 광석을 모으고 대장간으로 날라서 금속 덩어리를 만드는 개념도 있습니다.


  이 역시 게임을 단순한 사냥의 반복이나 노동, 숫적인 보상만으로 생각하지 않고, '플레이어와 게임의 대화'를 생각하며 고민한 디자인 방법일 것입니다.



  게임 플레이는 '게임과의 대화'이며, 대화는 더욱 유기적이고 상호적일때 훨씬 재미있는 법입니다.


  100원이라는 돈 대신에 [쥐가죽]이라는 아이템을 떨어뜨리는 디자인에는 바로 이 같은 고민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곤 해도 '쥐가죽'보다는 훨씬 있어보이는 아이템을 얻게 하는게 나을 겁니다. 아니 솔직히 쥐하고 싸우는 것 자체가 조금 부끄럽지 않나요? ^^


  오래 전에 제가 게임 [울티마 온라인]을 할 때 열심히 키운 대장장이로 칼싸움을 벌이다 토끼에게 맞아죽고 쥐하고 10분 동안 열심히 싸운 경험이 있지만...(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쥐 이겨라!'라고 응원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칼을 든 전사라면 그래도 늑대 정도하고는 상대해야죠. 아니면 거대한 낫을 든 키 2미터짜리 거대 쥐라던가.


[ 토끼에게 맞아 죽은게 부끄러운건 아니죠. 부끄럽지는 않은데... ]


  그래도 돈 100원보다는 50원짜리 '쥐 가죽'이 좀 더 뭔가 얻은 느낌을 더합니다. 아이템을 얻었다는 느낌만이 아니라, '쥐 가죽'이 숫자만으로는 처리되지 않는 그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더욱이 그것이 저 멀리 눈 덮인 산에서 이따금 발견된다는 전설적인 [스노우화이트 설표의 가죽] 같은 것이라면 뭔가 얻은 보람도 더 클 것입니다. 그것이 단순히 '판매용 드롭 아이템'에 불과하더라도.


이따금 마을에서 [쥐 가죽](아니 [스노우 화이트의 설표 가죽])으로 만든 물건이 발견되거나 한다면 더욱 그럴듯해 보일 겁니다. 왠지 내가 그 세계의 생활에 이바지한 느낌이 들테니까요.(더욱 이상적인 것은 유저들이 [스노우 화이트의 설표 가죽]을 많이 구해다 팔수록 그 물건이 더 늘어나 보이게 하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너무 복잡해지겠지요.^^)


  그것이 사람의 마음이고, 바로 그런 마음을 잘 생각하는게 훌륭한 게임 디자인. 게임을 단순히 반복 노동이나 작업이 아니라, 탐험할만한 세계로 느끼게 하도록 도와주는 디자인 방법입니다.


  "왜 쥐가죽이 필요한가요?"


  학생의 이 질문은 제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고, 이제껏 막연하게 느끼고 있던 생각을 제 것으로 만드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면 그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을 뜻하겠지요.

posted by 별을 좋아하는 표도기